[글마당] 그 날처럼 눈은 내리고
눈은 내리고 창끝 모서리에서 그냥 녹아 얼음이고 가는 눈발 솔잎 사이로 울면서 섞이니 바람마저도 하소연 없이 떠는구나 그때 그 날도 몹시 바람이 불었지 방향을 잃은 감각처럼 울안을 휘돌다가 내 영혼 훑고 그림자도 쓸고 간 그 바람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에 두고 햇볕을 밟았을 뿐인데 내 발자국 차가운 유리 속에 있어 돌멩이도 미끄러워 여윈 솔바람 비껴간다 외롭게 닫힌 문은 여적 하나 날카롭게 쪼개지던 얼음 조각들 살 속 파고들 때 젊은 외길 몹시도 재촉이더니 이젠 섣달의 내리막길에 선 옛 같은 오늘이 닫힌 내 맘 창 앞에 서게 하네 가슴 휜 달조차 울음 비우고 낙엽 누운 빈 뜨락에 냉기 쏟아부어 온기 찾는 이 새벽 그대가 놓고 간 줄이 짧아서 생각이 긴 것일까 생각이 길어 가파른 고갯길이던가 모든 길은 돌아오기 위해 있는 길이라는데 그 길은 아니어서 지워지지 않는 그대의 눈 덮인 마지막 길 녹아내리질 않아 나 외로움 달고 가는 길 이젠 보채지 않으려 온기 안고 느긋한 찻잔을 기울이는데 기우는 해가 산그늘을 넘어서고 있으니 뜨는 해는 얼마일까 돌아보는 아쉬움이 한 번 더 감기는 그 날처럼 눈이 내리네 손정아 / 시인·롱아일랜드글마당 얼음 조각들 창끝 모서리 눈발 솔잎